1. 1961년 <우주전쟁SpaceWar>을 컴퓨터게임의 효시로 잡으면, 게임의 역사는 대략 반세기 정도겠다. 강산이 다섯 번이나 변할 만한 시간이지만, 길게는 수천년이요 짧게는 몇백년을 내려온 다른 문화예술과 비교하기 무색한 막내둥이다. 하지만 현실을 주무르는 영향력까지 말석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새롭게 재편된 기술문명을 발판으로 무섭고도 가파르게 삶의 모습을 열심히 바꾸고 있다. 단순히 게임산업의 규모와 매출 때문에 그렇게 평가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흔히 하는 말대로, 문제는 경제라서 든든한 발판을 제공한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러한 발판을 딛고서 형성된 문화의 무늬들이다. 게임만의 독특한 경험은 무엇일까, 이 경험은 역으로 현실과 어떻게 만날까, 그렇게 만난 결과 어떤 갈등과 충돌이 벌어질까, 그것은 또한 게임에 어떻게 반영될까. 숱한 문제가 물밀 듯이 밀려왔고, 기존의 ‘현실적’ 담론은 때로는 고집스레, 때로는 허둥대며 대응했다. 최근에 다중접속역할놀이게임(이하 다중게임)에서 불거진 ‘물자현금거래RTM’ 논란을 생각해 보라. 현실의 법대로 하기에도, 가상의 뜻대로 하기에도, 곤궁한 처지에 몰려 버리지 않았나. 게임은 전과 다른 사유를 요청하는지도 모른다.
2.
사실 100백년 전에도 이렇듯 예술과 비예술의 접경에서 난처한 상황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사진이 발명되어 예술의 전체특성이 달라지진 않았는지 먼저 묻지 않은 채, 이제껏 사진이 과연 예술인지 판정하려고 수없이 헛되이 애썼다.”(벤야민) 19세기 사진과 영화가 등장하자, 많은 사람이 숱한 논쟁을 벌였다. 다양한 논쟁이 오갔으나, 당시에 중요한 것은 결국 한 가지였다. 그것들은 예술인가 아닌가. 기존의 순수예술에 익숙했던 사람들이 보기에 사진이나 영화는 예술로 보기가 어려웠다. 작가의 충만한 정신과 세련된 솜씨가 애초부터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세상을 묘사하는 능력은 회화보다 뛰어났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화가들은 생계까지 위협받는 상황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정작 위험에 빠진 존재는 ‘예술자체’였다. 적어도 벤야민이 보기에는 단순히 예술이다 아니다 하는지 논의할 계제가 아니었다. 흔히 하는 대로, 제 7의 예술이니 제 8의 예술이니 하는 식으로, 예술이란 딱지를 붙여봤자, 설명을 한 것이 아니라, 했다는 착각만 심어줄 뿐이다. 중요한 것은 예술계에 발생한 본성의 변화며, 그것을 추동한 힘이다. 기술은 예술의 내부에 깊숙이 똬리를 틀었고, 문화의 핵심 동력으로 올라선다. 예술은 기술을 자신의 짝패로 삼기에 이른다. 아니면 역사를 한 바퀴 돌아서 저 옛날 ‘techne’로 회귀한 것일까.
3.
알다시피 대중매체는 많은 것을 바꿔 놨다. 무엇보다 전체 문화의 영토를 넓혀냈고, 덤으로 구조까지 흔들었다. 혼자서 문화지형을 쥐락펴락하던 순수예술은 새로운 적수 때문에 급격히 요동을 쳤다. 순수예술로서는 단순히 교란하는 정도로 그쳤으면 좋았겠지만, 전체 문화판도를 내건 패권다툼으로 번져갔기 때문에 방심할 수 없었다. 매슈 아놀드가 문화의 아노미를 걱정하며 황급히 대응할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이때부터였다. 순수예술과 대중문화의 견고한 이분법이 확립됐던 것은. 담론의 영역도 혼란스럽긴 마찬가지였다. 벤야민처럼 새로움의 충격에 아찔한 반응을 보였던 사람도 있었지만, 대다수 학자들은 당혹해 하며 녹슨 칼로 허공을 밸 수밖에 없었다. 아도르노가 재즈에 부렸던 신경질을, 그린버그가 키치에 퍼부었던 악담을 생각해 보라. 지금이야 농담처럼 받아 넘길 수도 있지만, 당시에는 저주에 가까웠다. 어쩌면 전통적 미학이 소화하지 못했던 무력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4.
물론 구축주의처럼 대중매체의 진가를 진즉에 알아챘던 전위대도 있기는 있었고, 팝처럼 시간이 흐르자 순수예술의 영역에도 조금씩 이식도 되었다. 하지만 대중문화를 있는 그대로 응시할 때까지 매우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1960년대가 돼서야, 문화연구의 기틀을 잡은 버밍엄 현대문화연구소가 등장했다. 이때부터 대중문화는 순수예술과 대등하게 맞설 만한 담론을 갖추게 되었다. 여기서 대가가 따랐다는 것을 잊어서는 곤란하다. 문화의 얼개를 짜는 구도 또한 양극으로 분열시켰다는 사실을. 미학과 문화연구는 지적된 이분법을 그대로 이어 받아, 지금까지 화해할 수 없는 대립을 여전히 이어간다. 게임은 다시 한번 시험에 들게 하는 지도 모른다. 이 같은 분열과 대립을 훨씬 벌려 놓은 채로, 아니면 담론의 지형을 완전히 바꿔놓은 채로 말이다. 예술과 문화를 넘어서, 현실까지 끌어들기 때문이다. 게임은 예술가 삶의 대립을 지양하고 싶어 했던 저옛날 전위대의 꿈을 기술적으로 실현하는지 모른다.
5.
많은 사람이 지적하듯 게임연구는 여전히 미개척 분야다. 최근 북미에서 다양한 주제로 연구결과가 나오곤 있지만, 다른 것과 비교하면 걸음마 수준이다. 이것은 당연한 결과기도 하다. 사진과 영화는 태어난 지 100년을 훌쩍 넘었지만, 한참 지나서야 자신만의 미학을 내놓은 사실을 생각해 보라. 게다가 게임은 출발부터 예술과 문화에서 멀었던 탓인지, 인문학에 더욱 늦게 포착됐다. 물론 사진과 영화도 기술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당시에도 기존의 순수예술과 비교되며 그래도 수많은 미학적 논점과 예술적 논쟁을 생산했다. 게임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게임이 현대의 문화에 끼친 영향을 생각하면, 매우 이상한 일이다. 하기야 시각적으로 구현된다고는 하지만 컴퓨터프로그램을 인문학에 근거해 연구하고 비평하기란 기존의 상상력으론 힘들었을 것이다. 문제는 현실이 기다려주지 않았고, 게임은 거침없이 삶과 문화에 침투해 들어왔다는 것이다. 빨리 수를 내야했고, 서사학이 가장 먼저 부름에 응답했다. 너무나도 정직하게 말이다. 게임연구에 기여한 것이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문제의 지평을 편협하게 만든 것도 틀림없다. 서사로 소모되기에는 게임이 걸치는 영역이 너무 넓다. 게임은 구조자체가 다차원적 접근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MMORPG가 구현하는 세상을 생각해 보라. 그것은 작품이자 사회이자 소통이자 심지어 역사기도 하다. 게임인지 아닌지 논란을 불러일으킨 <세컨드 라이프>는 아예 개발자의 각본조차 없다. 그곳은 오직 참여자의 행위만이, 그래서 이루어진 삶밖에 없다. 그렇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상적 삶’이다. 사진과 영화가 던졌던 충격은 그래도 예술과 문화의 영역에 한정됐다. 게임은 그보다 넓고 크다. 인간의 존재와 사회까지 포괄하기 때문이다. 학제적 연구프로그램인 ‘문화연구’는 처음으로 제짝을 만난 것일 수도, 아니면 진정한 시험대에 오른 것일 수도 있다.
6.
게임에서는 ‘비평’의 문제도 괴로운 지뢰투성이다. 일반적으로 봤을 때, 비평의 기본은 ‘텍스트비평’이다.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든, 작품의 구조를 분석하든, 외형이 고정된 작품을 바탕으로 진행한다. 지난 몇 십년 동안 구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 등장해, 비평의 지형을 바꿔놓긴 했지만, 그래도 ‘작품・텍스트’가 중심이었다. 그런데 게임은 다르다. 물론 게임도 일종의 텍스트로 간주하기도 한다. 미술처럼 작가의 위치에 준하는 개발자가 존재하고, 영화처럼 합리적 생산체계를 갖추고 있다. 다른 장르의 구조와 크게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수용의 양상이다. 앞서 지적했듯, 게임에서 수용은 순수한 수용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행위’로 전화되어, 게임텍스트의 일부가 된다. 즉 작품의 존재론적 측면에서 사용자의 행위는 영화나 미술처럼 필요조건이 아니라 충분조건이다. 이것은 ‘상호작용예술interactive arts’에서 겪는 비평적 난점과 동일하다. 작품의 의도와 구조를 분석하다 보면, 어느새 사회학까지 언급하는 과정을 겪게 된다. 특히 다중게임의 경우 작품과 주체가 만나는 ‘인터페이스’는 ‘사회화’로 이어지며, 주체와 주체가 만나는 ‘파티’는 ‘사회형성’으로 나아간다. “중요한 것은 남자와 여자의 성교intercourse가 아니라, 인간과 기계의 가교interface다.”(Stelac) 여기에 다중게임 내부의 ‘사회발생’의 측면까지 고려하면 인류학까지 고민해야 한다. ‘상호작용’ 개념의 뿌리가 사회학이라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Dinkla) 이 결과 비평의 중심은 텍스트의 엄밀한 구조분석에서 수용자의 행위분석으로 넘어간다. 문제는 또 있다. 그것은 ‘기술’이다. 과연 게임텍스트를 분석할 때, 사용된 기술을 어떻게 어떤 비중으로 다룰 것인가. 초기의 영화비평에도 비슷한 문제가 제기됐다. ‘클로즈업’과 ‘롱테이크’ 같은 개념은 지금이야 익숙하게 사용되지만, 초창기 때는 그렇지 못했다. 영화의 기술적 기제mechanism를 자기화하여 비평적으로 각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기술을 ‘읽고 쓰는 능력literacy’이 미성숙했던 것이다. 게임은 영화보다 이러한 기술적 간극이 훨씬 깊다. 영화는 그래도 기술이 기계적 수준이었기 때문에, 기제가 가시적이었다. 게임은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전자적 수준에서 돌아가는 내부구조는 마치 블랙박스 같아서,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알 수 없다. 게임엔진, 그래픽기술, 프로그래밍언어 등등, 무엇을 얼마나 숙지해야 할지 지금으로서는 가늠하기 힘들다. 영화의 경우처럼 과연 시간이 흐르면 극복될 만한 성질일지, 확실하지 않다. 아니면 다른 방법을 모색하든가.
7.
문화의 측면에서도 게임은 남달랐다. 게임 또한 일찍이 대중문화가 했던 대로 단단한 ‘경험의 공동체’를 구성했다. 동일한 매체로 동일한 경험을 다수가 동시에 하는 것, 어쩌면 경험의 공동체에 게임만큼 적확한 매체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다중게임의 경우, 주체를 속박하는 시공간이 정말로 장애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전의 대중매체가 시공간을 초월한 경험을 구축하긴 했지만, 시간에서 걸리거나 공간에서 걸리는 등, 일정한 한계가 따랐다. 게임은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완전히 벗어났다. 게다가 경험의 성격도 다르다. 영화, 만화, 사진, 음악 등등, 이전의 대중문화는 ‘수용’의 경험만 제공했다. 앞서서 생산되어 형태가 고정된 작업을 오로지 보기만 듣기만 했다. <록키 호러 픽쳐 쇼>의 광적인 관객문화처럼, 간혹 수용자의 적극적 개입이 나타난 경우도 있었지만, 대체로 고분고분한 샌님 같은 경험이었다. 브레히트가 (연극에서) 기획했고 벤야민이 (영화에서) 확장했던 수용자의 ‘정신분산적 비판의 거리’는 시간이 흐르자, 애초의 활력을 잃고서, 거리는커녕 온순하게 포박됐다. 게임의 경험은 이 같은 성격이 애초부터 없다. 받기만 하지 않고, 주기도 한다. 많은 이가 지적했듯, 게임의 구조는 놀이자의 행위를 전제로 삼기에, 그의 행위는 생산이자 창조가 되며, 오롯한 세계를 이룬다. 이 같은 경험의 성격은 게임이 성숙된 오늘날, 다중게임의 ‘세계’에서 너무나 자명해졌다.
8.
게임이 마주한 현실은 그래도 꿈쩍도 안 했다. 게임은, 적어도 게임을 보는 관점만은 여전히 아이가 하는 놀이거나 시간을 죽일 때나 하는 소일거리였다. 그것은 현실을 넘봐서는 안 되었고, 현실에 걸림돌이 되서는 더더욱 안 되었다. 게다가 대중문화는 권력이 필요할 때마다 대중의 의식을 조작하는 공간이자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투영하는 곳이기 때문에, 사회적 문제를 은폐하는 공공의 처리소가 되곤 했다. 게다가 현재 게임은 대중문화를 선도하는 ‘지배종’이다. 일찍이 만화가 그랬고 영화가 그랬던 것처럼, 모난 돌이 정을 맞게 되어 있다.
9.
현재 게임은 안팎에서 기로에 서있다. 우선 문화산업의 기둥으로 우뚝 섰으나 성장은 예년만 못한 상황이다. 지난 10년 동안 다중게임을 주도하며, 전세계에서 게임장르와 게임산업을 성장시켰지만, 최근에 와서는 안방에서도 <와우 온라인>에게 왕좌를 넘겨줄 정도로 동력이 약화됐다. 해외시장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초기에 선점했던 한국의 다중게임은 대형시장에서 조금씩 지분을 상실해 갔다. 물론 다중게임의 장르와 시장이 성장한 탓도 있다. 미국은 <와우 온라인>을 선보이며, 기존의 한국형 다중게임과 다른 구조와 콘텐츠를 제공했다. <리니지>를 비롯한 한국의 다중게임은 열세를 면치 못했다. 그동안 한국의 게임업계가 가만히 손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캐주얼게임과 FPS게임 등등, 장르를 확대했다. 하지만 한국시장의 규모의 한계 때문에, 장르다변화는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고, 시기마다 인기를 끄는 장르에 매몰되는 경향을 보였다. 지난 2년 동안 무수히 쏟아져 나왔던 FPS게임을 생각해 보고, 얼마나 성공했는지 냉정히 평가해 보라. 양질의 신작게임은 고사하고, 한국의 게임산업 전체의 기회비용만 소모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다고 사회적・문화적 평가가 좋아진 것도 아니다. 몇 년 전에 벌어진 ‘김일병 총기난사사건’ 때를 생각해 보라. 게임은 여전히 신문의 ‘사회면’을 장식하며, 범죄와 사건의 악역으로 억울하게 불려 다닌다. 이러한 논란 가운데 게임의 미적 가치와 문화적 활용성이 논의될 여지는 거의 없었다. 대체로 다중게임과 FPS게임의 폐해를 지적하며, 현실을 망각시키는 게임중독과 게임폐인 문제로 담론이 흘러갔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특히 고민할 구석이 많다. 한국의 ‘게임계’가 게임쟁점에 대응하는 방식과 한계를 그대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10.
여기서 게임은 만화와 영화를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지금은 게임이 대중문화를 주도하지만, 만화와 영화는 저마다 시기를 달리하며, 대중문화를 뜨겁게 달구었던 주역이었다. 당연히 게임에 앞서 수많은 ‘논란과 문제’를 일으켰던 전과가 혁혁했다. 대표적인 사례를 꼽자면, 이현세의 <천국의 신화>와 장선우의 <거짓말>을 들 만하다. 이 두 가지 사건은 한국에서 대중문화를 논의할 때 빼놓기 힘들 정도로 중요하다. 둘 다 ‘음란성’ 논란을 일으키며 수많은 담론과 토론을 양산하던 과정은 동일했다. ‘표현의 자유’와 ‘청소년 보호’라는 오늘날 익숙하되 잘못된 ‘의제’도 이때 형성됐다. 하지만 이후 각각의 장르에 미친 결과는 판이했다. 만화는 조금씩 몰락해 지금은 산업의 존폐까지 거론될 지경에 이르렀지만, 영화는 그 사건에 아랑곳 하지 않고 탄탄대로의 길을 걸으며 장르를 살찌웠다. 그러면 왜 이렇게 됐을까. 만화와 영화는 무엇이 달랐던 것일까. 만화나 영화나 똑같이 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대중문화의 든든한 기둥이었다. 하지만 굴곡 많은 현대사의 전철을 그대로 밟았던 지라, 검열과 억압의 칼날이 속속들이 배겨졌다. 특히 만화는 권력이 두드리는 동네북이었다. 때로는 국면을 전환하기 위해서, 때로는 이데올로기 투쟁을 위해서, 주기적으로 만화를 화형시켰다. 국가가 후원하고 검찰이 주연을 맡고 언론이 연출한 이 ‘국가적 퍼포먼스’는 호환마마보다 무섭게 창작자를 옥죄었다. 특히 아쉬웠던 때는 90년대 초반이다. <매주만화>와 <주간만화> 같은 주간지가 등장하여, 아동에만 머물렀던 만화시장을 성인까지 끌어들일 ‘태세’를 갖추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바로 등장한 선정성 논란 때문에, 만화의 기세는 꺾이고 말았고, 오랫동안 침체의 늪에 빠졌다.
11.
이러한 상황은 영화도 다르지 않았다. 물론 <고래사냥> 같은 저주받은 걸작들이 70년대와 80년대에 등장하기도 했다. 하지지만, 정말 가뭄에 콩 나듯 하는 수준이었고, 엄혹한 군부독재 시절을 감안하면 정말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명백하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못하고 권력의 검열이 창작자의 목을 광장에서 자르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양한 장르의 영화가 등장하지 못하고 성인용 에로영화가 영화계를 판칠 수밖에. 지금이야 보기 힘든 장면이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만화가 겪었던 상황과 똑같이 비디오를 불태우는 ‘퍼포먼스’가 심심치 않게 연출되곤 했다. 이 같은 억압은 단순히 소재가 제한되는 정도로 문제가 그치지 않는다. 오랫동안 검열이 작동하면 그것의 기제가 창작자 깊숙이 자리 잡게 되어, 상상력의 범위까지 좁혀놓기 때문이다. 일종의 내부검열이 작동하여 표현의 싹을 잘라놓는 것이다. 한국의 문화산업에서 장르를 가리지 않고 누누이 지적되는 ‘기획력 부족’은 이 같은 검열과 억압의 산물일 가능성이 크다. 한국이 지난 십 년 동안 문화산업의 역량을 키우겠다고 팔을 걷어 올렸다고 하지만, 마치 돈 되니까 상상력을 키우라며 윽박지르는 꼴이다. 수십년 동안 억눌렸던 창작자의 ‘상상력’은 단기간에 속성될 수 있는 성격이 아닌 것이다.
12.
그래도 대중문화에도 어김없이 봄은 찾아왔다. 90년대 들어서 한국은 두 가지 도약을 이뤄냈다. 첫째 정치에서 형식적 민주주의를 쟁취한 것. 둘째 경제에서 소비자본주의로 도약한 것. 90년대 초반 한국은 양적 성장의 열매가 주는 단맛에 빠져들었다. 특히 대중문화의 성장은 놀라웠고, 걸맞게 소비주체가 왕성하게 생산됐다. 앞서 지적대로 만화와 영화도 이때 나름의 성장의 기틀을 잡았었다. 하지만 앞서 지적대로 서로가 이후에 걸었던 길은 완전히 판이했다. 이현세의 <천국의 신화>가 만화의 악몽이 되어 만화계 전체를 흔들었다면, 장선우의 <거짓말>은 똑같이 숱한 ‘문제’와 ‘쟁점’을 양산했음에도, 영화계에 끼친 악영향은 의외로 적었다. 오히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고 할까, 광고의 효과까지 보면서 제법 입소문까지 났을 정도였다. 물론 영화가 좋았다거나 흥행에 성공했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차이는 어디서 벌어진 것일까. 여기서 <천국의 신화>와 <거짓말>의 음란성 문제를 논의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음란성’이나 ‘선정성’은 기껏해야 ‘사회적 억압’을 눙치는 알리바이일 뿐이다. 국면에 따라 얼마든지 걸면 걸리는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만화계와 영화계가 비슷한 쟁점에 어떻게 대응했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13.
핵심은 담론, 주체, 제도, 이 세 가지다. 그것들이 만화와 영화의 운명과 미래를 갈랐다. 첫 번째 주체의 측면. 만화계는 지금이나 예전이나 담론을 생산할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 만화미학이나 만화이론 같은 전문서적은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며, 만화비평은 몇 개의 웹진에서 가뭄에 콩나듯 하는 정도며, 원고지 10매 이상을 넘기 힘든 인상비평이 대다수다. 온라인 오프라인 가리지 않고 수많은 잡지와 전문지를 보유한 영화와 비교할 그릇이 애초부터 안 된다. 이것은 위기국면에 닥쳤을 때 전략과 역량의 차이로 그대로 나타났다. 스포츠신문의 선정성 논란이 파국으로 치달으며, 이현세의 <천국의 신화>가 대미를 장식할 때를 기억해 보라. 대항담론을 생산하지 못했던 만화계는 고스란히 ‘죄인’으로 전락했고, 만화계의 대부 이현세가 법정에 끌려들어가는 희대의 공개처형 장면을 목격해야 했다. 반면에 영화계는 어떻게 대응했을까. 위기를 기회로 삼는다고 할까, 적나라한 성표현과 흔치 않은 서사 때문에 몇 번에 걸쳐 심의 논란을 겪더니만, 개봉되고 나서는 더욱 큰 ‘문제’를 일으켰다. 하지만 <천국의 신화>처럼 법정에 끌려가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솔직히 서사만 본다면야, 성인과 여고생의 성도착적 애정편력이 신화의 시대의 난교장면보다 훨씬 성적일 테지만, 영화계를 비롯하여 장선우는 이곳저곳 여러 매체와 인터뷰를 하며 음란성 문제를 ‘표현의 자유’ 의제로 전화시켰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을 뒷받침했던 것은 영화계 곳곳에 포진한 담론의 기지였다. 한마디로 <천국의 신화>는 사회면을 장식하며 방어하기 급급했다면, <거짓말>은 문화면의 쟁점으로 만들며 공격적으로 대증했던 셈이다.
14.
이것은 두 번째 주체의 문제 탓이 크다. 90년대 한국의 영화계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여러 가지다. 여기서 특히 중요한 요인이 바로 고급인력이다. 즉 386세대 유학파가 충무로에 대거 수혈됐다. 그들은 담론・제작・감독을 가리지 않고 차지하며, 영화판 전체를 새로 짰다. 이러한 과정에서 이른바 도제식 ‘충무로시대’가 마감되고, 영화계가 도약할 합리적 계기가 마련됐다. 세 번째 제도의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된 셈이다. 담론의 교환체계, 작품의 생산체계, 인력의 교육체계, 삼박자가 맞아 떨어졌다. 반면에 만화는 그렇지 못했다. 변변한 인력을 확보하지 못한 채, 동네북처럼 두들겨 맞기만 했고, 그런 와중에도 자신의 입장을 대변할 진지조차 마련하지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이란 말이 꼭 들어맞는 상황이었다. 만화에 대해서 대화할 공간도, 대화할 주체도, 그것을 생산할 제도도 없는 것이다. 게다가 한국의 만화산업은 주먹구구식 구멍가게처럼 영업을 하는 바람에, 자국의 만화창작자를 장기적으로 육성할 생각조차 안 했다. 순전히 수익에만 급급하여 공공연히 일본만화 배급자 역할을 자임하기까지 했다. 그 결과가 현재의 만화계의 모습을 만들었다. 자국의 만화조차 실릴 곳을 찾지 못해서, 번번이 중간에 연재를 끝내버린 만화의 운명을 말이다. 자신을 대변할 담론의 부재가 이 모양 이 꼴을 만들었다고 하면 과연 과장일까. 어쨌든 게임이 갈 길은 명백하겠다.
15.
게임산업의 구조는 합리화된 형태를 갖추었을지 몰라도, ‘게임계’ 전체로 시야를 확대하면 여전히 부족한 것이 많다. 먼저 게임에 관련된 정보와 담론이 어디서 만들어지고 어떻게 흘러가는지 냉정히 관찰해 보라. 주요 일간지는 경제면에서 주로 다루거나 사회면에서 ‘출연’시키고, 게임전문 주간지는 심층기사를 내보낸다고는 하나, 이 역시 산업과 개발에 초점을 맞춘 기사 일색이다. 한마디로 이론과 비평과는 거리가 멀고, 게임자체를 비평하고 분석하는 공식매체는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다. 최근 들어 게임이 중요한 대중문화로 떠오르자, 주요 일간지 홈페이지에 게임부문을 독립시켜 놓기도 하지만, 비슷한 수준이다. 게임웹진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신작 게임을 소개하지만, 정보제공 이상을 넘지 못한다. 엄격하게 분석하는 글보다 게임을 공략하는 글이 우선하는 식이다. 오히려 흥미로운 분석은 개인 블로그에서 곧잘 발견되기 한다. 오랫동안 게임을 했던 열혈사용자가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실감나는 게임체험을 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론의 세례를 받지 못한 글은 한계가 분명하다. 게임텍스트를 당대의 문화와 사회에 자리매김하며,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어떤 삶의 무늬를 그리는지, 텍스트의 ‘맥락’을 넓히지 못한다. 오성이 따르지 못한 경험은 맹목으로 떨어질 공산이 높다. 경험은 비평의 필요조건일 따름이다. 그러면 학계의 논문은 어떤 상황일까. 게임이 유력한 산업으로 성장하자, 많은 학교에서 게임학부를 세웠지만, 주로 제작 쪽에 힘을 기울인 탓에, ‘게임학’을 온전히 발전시켰다고 보기 어렵다. 물론 필요한 부문의 연구 성과겠지만, 대개의 논문이 공학・기술・프로그래밍이나 정책에 치우쳤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기술과 인문학 사이에 벌이진 태생의 골은 매우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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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가까이 하기에 너무 멀었던 게임과 인문학 ‘사이’를 어떻게 좁힐 수 있을까. 당연히 단기간에 거리를 극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영화의 전례를 보더라도 수십년이 걸렸다. 그렇다고 가만히 손놓고 앉아서 구경만 할 수는 없는 일, 방안 역시 세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보자. 첫째 주체의 문제. 그래도 최근의 상황은 옛날보다 양호해졌다. 미학, 철학, 문학, 사회학, 커뮤니케이션 등등, 다양한 분과의 연구자들이 조금씩 게임연구에 동참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 측면은 이들 연구자들이 게임을 본격적으로 경험했던 게임 1세대일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이다. 이것은 게임계에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물론 게임을 했다는 것만으로 게임에 호의적일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은 억측이 되겠지만, 최소한 이들이 게임을 연구대상으로 삼는다면,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훨씬 풍부한 연구결과를 내놓지 않을까. 이 세대를 체계적으로 발굴하고 묶어내어 담론의 생산자로 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을 묶는 연구자 네트워크를 어떤 식으로든 빨리 구성할 필요가 있다. 현재 기술중심으로 구성된 게임학회 외에 인문학 중심의 연구자가 만든 게임학회도 있어야 하겠다. 사람만 모인다면 우선 팀블로그 같은 것을 운영해 보면서, 게임담론의 중심가교를 삼는 것도 좋겠다. 또한 연구자 사이의 교류 외에도 개발자와 연구자를 엮는 모임도 고려해보자. 서로가 게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짤막한 워크샵 같은 것을 기획하여, 서로의 거리를 좁히고 ‘게임경험의 공감대’를 넓히는 것도 중요하다. 개발자는 게임창작에 필요한 인문학적 상상력을, 연구자는 게임연구에 필요한 기술적 배경을 얻을 수 있으리라.
문화연대 정책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