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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2월 24일
![]()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현실을 진실하게 응시했던 사진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자잘한 세부를 제거할 만큼 성숙해졌다고 볼 수도 있겠다. 사진형식이 태어난 지도 어언 170년 역사, 줄곧 정직한 현실을 충실히 담았던 정동석의 궤적, 사진형식도 그렇고 정동석의 이력도 그렇고, 충분히 고개를 주억거릴 만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피골이 상접한 현실을 설명하기에 부족해 보인다. 더군다나, 화려하기 짝이 없는 도시의 밤풍경이다. 밤이야말로 도시 본연의 얼굴이요, 일찍이 인공의 낙원으로 숱한 상상력을 불러일으켰던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더욱더 기이해 보인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도시의 밤풍경만큼 아찔한 현실 또한 없다. 그나마 낮이라면 도시는 자연과 더불어 있지만, 밤이 되면 완전히 자연을 초월해 버린다. 이 과정에서 살아 숨쉬는 자연의 숨결이 남김없이 제거되는 것은 당연지사, 광막한 사막에 밤하늘의 별처럼 홀로 반짝이는 라스베가스를 생각해 보라. 모든 공간이 모든 존재가 완벽한 ‘가상’이다. 이곳에서, 뿌리 채 뽑힌 사물들은 쇼윈도에서 반짝이며, 고향을 잃어버린 인간들은 거리에서 전시될 뿐이다. 이렇게 본다면, 도시는 결국 현실을 인공적으로 병치한 초현실, 혹은 자연을 초현실적으로 조립한 인공이 아닐까. 따라서 가상만이, 껍데기만이, 밝게 빛나며 존재할 수 있으므로, 네온 줄무늬만큼 ‘현실적인’ 형상은 없을 것이다. 가상에서 이루어지는 사진형식과 도시형식의 기묘한 일치가 아닐 수 없다. 이에 따라, 사진에 대한 현실주의의 기묘한 승리가, 사진을 초월한 현실주의의 흥미로운 진화가 이루어진다. 하지만 그만큼의 대가는 따르는 법, 현실을 촘촘히 기록했던 사진의 잠재력이나, 예술에 생생한 질료를 제공하던 현실이나, 먼지처럼 사라져 버린다. 정동석의 사진에서 그나마 온전해 보이는 달조차, 구원의 희망이기는커녕, 운신하기도 버거워 보인다. <아트인컬쳐> 이글루스 가든 - 미술을 보고 읽고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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