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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4월 25일
걸려 있는 사진을 볼 때마다, 가끔 거북한 느낌이 불쑥 솟구치곤 한다. 내가 도대체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눈이 부셔 시선이 교란되기 때문이다. 한 순간 길을 잃고, 미아가 되어 버린다. 여기에 유리판으로 덮여 조명을 받고 있으면, 금상첨화다. 거울도 아닌 것이, 바깥을 비쳐내며 밀쳐내는 탓에, 정작 사진이 담은 풍경이 잠깐사이 온데 간데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그때를 못 참고 사진을 거울삼아 출현한 관객의 꼴이라니, 적막한 공간에 어둑한 모습 때문인지 영 볼품사납다. 게다가, 다큐멘터리 사진이라면, 교란의 효과는 더욱더 강화되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어찌됐든 진실의 무게를 짊어지고, 정확하게 현실의 반영을 쫓아가야 하는데, 시선이 애초부터 가로막히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하여, 진실의 무게는커녕, 현실의 모습마저 아련해지기 일쑤다. 다큐사진의 입장에서 보면, 기가 막히는 노릇이다.
물론, 한순간의 일이리라. 다큐사진을 보면서, 이렇게까지 생각하지도 않으며, 이 만큼까지 빈틈이 드러나진 않는다. 하지만, 주체의 시선이 교란된다는 것, 그 옛날 회화를 볼 때처럼 풍경 깊숙이 침투해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 질료적으로 ‘깊이’를 구축하기 힘든 사진이 짊어질 수밖에 없는 형식이자 형극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진실을 기록한다는 다큐사진의 잠재력이 소실되는 것은 아니다. 박흥순의 <한강>이 그렇다. 한강의 물줄기를 따라, 때로는 인간의 흔적을, 때로는 자연의 무늬를, 가끔가다 뒤섞인 모습을 처연하게 잡아냈다. 그의 연작 사진들을 보고서, 다큐사진의 힘을 의심할 구석도 사람도 없으리라. 하지만 그의 사진에서 현실은 무엇인가 맥이 빠져 버린 것 같다. 현실의 냄새도 나지 않고, 현실의 활력도 없는 것이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인간의 흔적마저 있는 그대로인 현실을 다루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피와 땀이 튀는 사회적 현실이라면, 그나마 피사체와 눈이라도 맞춰보겠지만, 그런 사물도 상황도 없으니, 어디 호흡이라도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자연과 교감하기란 더더욱 불가능한 일, 그런 능력은 기억조차 희미한 과거에 잃어버린지 오래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 결국 변화될 수 없는 현실. 그렇다, 무엇인가 빠진 것 같은 모습은, 주체가 소멸했기 때문에 빚어진 것이다. 여기서 발생하는 아이러니, 주체의 흔적을 지워낼수록, 객체의 활력이 사라진다는 것. 인간사진기를 내세운 시네로망과 절묘하게 교감하는 셈이다. 한때 사진기를 든 인간이 있었을지 모르지만, 현재 사진기가 된 인간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대로 반영・반사하기만 할 뿐인 주체, 이렇게 하여 관객도 작가도 현실 앞에서 무력해 진다. 시각으로 환원된 주체의 말로다. “ 과거 속으로 멀어짐에 따라 진실성도 줄어든다. 그래서 지금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다.”(로브그리예) 박흥순의 사진은 스스로 과거로 멀어져간 사진이다, 그래서 아무 일도 없었고, 없으며, 없을 것 같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치 사진을 위해 준비된 것 마냥, 시간과 공간의 흔적을 찾기 힘든 현실처럼 보이는 게 아닐까. <아트인컬쳐> 이글루스 가든 - 미술을 보고 읽고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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