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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6월 25일
![]() 우선, 김보형의 작업이 지극히 서사적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앞서 지적한 대로, 어두운 미로를 손을 더듬어 헤매다 보면, 하얗게 빛나는 공간에 하얗게 채색된 작업을 마주치게 되는 모습을 생각해 보라. 마치 이런저런 깊은 심연에서 허우적대다가, 광명이라도 되찾는 듯하다. 이런 과정을 곰곰 따져보면, 주체가 벌이는 모험 같은 것을 축약해 놓은 것만 같다. 제목이 암시하는 대로, 진리를 찾기가 어디 쉽기야 하겠는가. 더불어, ‘빛과 어둠,’ ‘곳과 길’ 등등, 이 같은 범주가 교묘히 얽혀 있는 탓에, 서사의 리듬이 제법 강렬하게 약동한다. 하지만, 그토록 헤매며 도착한 곳에서, 우리는 실망할 수밖에 없다. 내가 어두운 미로를 헤맸던 결과가, 마치 희롱하듯 손끝 너머에서 잡힐 듯 말 듯 아른거리는 환영들이라니. 게다가 노골적으로 둘로 분열되어 있을 뿐더러, 어처구니없게도 표면뿐인 하얀 윤곽이 깊이있는 형상에 앞서 존재한다. 이렇게 되면, 환영이 존재의 근본이요, 가상이 진상의 원천이 될 수밖에 없다. 기대가 없다면 실망도 없는 법이다. 이것은 우리가 원했던 결과는 아니다. 정확히 말해서, 적어도 익숙한 극본에 따른 결말은 아니다. 유령이 진리가 되서는 안 된다는 것,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진리가 유령처럼 나부끼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것, 이 역시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유령이야말로 진리일지 모른다는 것, 더 나아가 지금까지 ‘유령’과 ‘진리’의 자리가 김보형의 작업처럼 뒤바뀌어 있었는지 모른다는 것, 그렇다면 지극히 예견된 실망이요, 실망할 게 없는 실망일지 모른다. 문득, 미술관이란 옛날이나 지금이나 무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흥미롭다. 무덤이야 항상 유령의 거처기 때문이다. <아트인컬쳐> 이글루스 가든 - 미술을 보고 읽고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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