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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1월 25일
![]() 그래도 그렇게 죽을 수는 없겠지, 은퇴를 앞두고 마지막 한탕을 준비하는 늙은 악당의 심정이 그랬을까. 자연과 회화는, 옛날의 영화를 꾸는지 않는지 어쨌든, 다시 맞잡고 김성남의 작업에서모습을 드러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절박함인지 기괴함인지, 모호한 느낌의 정체는 무엇 때문일까. 물론, 고전주의적인 ‘조화로운 전체’를 기대한 것은 아니다. 화면에 한가득 채우는 충만함을 바란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만큼 체계적으로 대립할 것이라고 생각하진 못했다. 멀찍이 내려다 보이는 전망은커녕, 시선을 압박하는 전경이 코앞에 아른거리고, 또렷한 대상을 대신해, 흐느적대는 선들은 형태를 뭉갠다. 게다가, 이질적인 것들의 존재들, 인간처럼 보이는 물체나, 동물처럼 보이는 형태들, 결코 자연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듯이, 있는 것만으로 날카롭게 날을 번득인다. 어지럽히려고 작정하고 있는 것만 같으니, 당연히 낯설고 괴상할 수밖에. 그래서, 마지막 한탕을 노렸던 악당들은 어떻게 됐을까. 샘 페킨파 감독의 <와일드 번치>는 냉정하게 대답한다. 모두 다 죽는 것이다. 악당은 물론이요 대적했던 사람조차 모두, 회색빛 건물에 시뻘건 혈흔을 남기며 영원히 눕는다. 늙은 악당이 꿈꾸는 마지막 한탕의 희망이란, 언제나 어찌나 똑같은 것인지, 기가 막힌다. 김성남의 작업이 한탕 운운할 정도는 아닐 것이다. 솔직히 한탕할 거리도 없는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런 식으로 불러낸 결과, 무엇이 어떤 식으로 나타나는지, 냉정히 생각해야 하겠다. 잃어버린 것은 추억하는 것이지, 소환하는 것이 아니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은, 기념할 때를 제외하면, 계속되지 말아야 한다. <아트인컬쳐> 이글루스 가든 - 미술을 보고 읽고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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