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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05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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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히 바라보면 지나가는 건 그저 바람이요 구름뿐이다. 있긴 있으면서 아무것도 없는 것, 그런 것은 생각하면 이런 옛 성만도 아닐 것이다.”(이태준) 1. 조각은 근본이 구축행위다. 무엇인가 ‘짓는 짓’이다. 이렇게 지을 때, 자름과 붙임은 조각의 두 가지 기초를 이룬다. 혹여나 자르는 것이 어째서 구축이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짓기’ 자체를 물리적인 의미로 한정한다면, 어리석은 일이겠다. 이때의 짓기는 ‘poesis’, 즉 자연physis와 대립되는 ‘인공・문화’를 뜻하기 때문이다. 자연의 질서를 거스르는 인간적 의지의 표현으로 봐야 한다. 해서, 자연을 가르며 신정을 세워서 삶의 터전을 출현시킨 희랍이 자신의 짝패를 찾았던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서양철학은 사실 이 건축에의 의지에 대한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가라타니 고진) 사유의 집을 짓든 사물의 꼴을 짜든 똑같은 의지가 작동하는 셈이다. 그렇기에 조각이야말로 인간의 인간됨을 표현하는 원초적 몸짓으로 간주된다. 2. 여기서 유념할 점은 자름과 붙임의 변증법이다. 더하고 빼고 더하고 빼고 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마치 공책에 연필로 썼다가 지워도 눌린 자국이 슬그니 남아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흔적이 잔존한다. 인류의 문명이란 결국 이러한 흔적이 켜켜이 쌓인 결과일 뿐이다. 예술이 과거에 자연을 모방하려 했다는 사실은 그렇기에 가상Schein이요 과잉surplus일 수밖에 없다. 인공인데 자연인 척하는 가상, 자연 위에 덧붙이는 과잉, 예술의 본성이 기만이 되는 역설은 여기서 나온다. 하지만, 신, 이성, 역사 등등, 이러한 가상은 역사적으로 탄탄히 뒷받침 받았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서 허위가 구축한 문명은 끝끝내 파탄을 맞게 된다. 신은 떠났고, 이성은 과학을 무기로 인간을 태웠고, 역사는 종말을 맞이해 쓰지도 읽지도 않게 됐다. “그는 단지 암흑 속에서 하루살이처럼 생활하고 있었다. 이가 빠진 무딘 칼을 지팡이로 삼고서.”(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인간 또한 길을 잃고서, 정신적 나그네 신세로 전락하고야 만다. 조각을 포함한 예술 역시 몸부림 쳤지만, 좌대를 잃고서 쓰러진 형상의 운명처럼, 구석으로 내면으로 쫓겨 갔다. 유상수의 작업은 바로 거기서 그곳에서 서있다. 이러한 폐허 위에 연약한 집을 짓는다. 3. 날아갈 듯 찢어질 듯 연약한 질료인 종이는 폐허의 집에 딱 맞는 질료다. 그가 똑같이 자르고 붙일 지라도, 여느 조각과 철저하게 대립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종이는 전통적 조각의 욕망을 일치감치 포기하는 질료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종이는 평면이다. 이러한 지면의 질서는, 사유의 질서라면 몰라도, 본성상 입체를 지향하는 구축과 맞설 수밖에 없다. 육중한 건축적 의지가 뿌리부터 잘려나간 셈이다. 게다가, 한지처럼 자연을 잡아당기는 종이도 아니다. 그저 주위에 눈을 돌리면, 손쉽게 잡히는 천연색 잡지가 쓰였다. 뻣뻣하고 손가는 대로 잘리고 접히기 때문에, 무엇인가 만들기 좋을지 몰라도, 질료의 질감을 살렸다든지 하면서, 특별히 질료를 보라고 만져 달라고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종이의 빛깔이 형형색색 수놓는 형상이 새로운 말들을 하고 있을까. 그것도 아닌 듯 하다. 형상이 보이긴 하지만, 여느 조각처럼 입체의 의지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여느 회화처럼 재현의 욕망을 지닌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오해하진 말자. ‘못’ 짓는 것이 아니라, ‘안’ 짓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엇을 재현했는지 따지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무엇을 하고 있는지 추적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외롭고 약하다. 무엇인가 짓겠다는 의지만이, 무엇이든 지을 것이 있기는 있는지 하는 회의만이, 서있다. 그는 힘겹게 ‘수행’하지만, 종이는 종이대로 조각은 조각대로 본성을 잃고서 헛됨만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 4.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헛됨이 헛됨이 아님을, 구멍이 구멍이 아님을, 직시해야 한다. “빈 곳이 있어야 채울 마음이 생겨난다…구멍이 있는 것은 모두 인간적이다. 인간은 구멍의 모음이다.”(김현) ‘있긴 있으면서도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고, 결코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채우고 비운다고 헛되지 않냐고 묻는 것이 아니라, 몸소 수행하는 몸짓이 자신에게, 더불어 인간에게 증명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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