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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07월 07일
![]() 야마다 에이미의 속삭임은 달콤하다 못해 시릴 정도다. ‘젊은 시절’을 낭비하라는 것이다. 이 얼마나 불온하게 매력적인 말인가. 일찍이 낭비는 악덕으로 여겨진 탓에, 무엇이 됐든 용납되지 않을 텐데, 그것도 모자라 인생의 금쪽같은 ‘젊을 때’를 무용하게 탕진하란다. 그녀는 ‘젊은 시절’에 한정했지만, 생각을 넓혀도 상관없을 것이다. 아니, 한국 같은 곳은 구석구석 넓혀야 마땅하다. 언제나 죽어라 일하는 곳에서, 일하지 않으면 못하면 사람 취급받지 못하는 곳에서, 그녀의 조언은 망언에 가깝다. 하지만, 놀 때도 일할 때처럼 다같이 손잡고 열심히 하는 꼴을 보면, 무엇인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 같다. 하지만 어쩌랴, 혼자서는 놀 줄 모르는데. 하기야 사람 탓만 할 수 없는 일이다. 일분일초가 아깝다고 어릴 때부터 몸값을 높이려 이 학원 저 학원 전전하며 등에 지고 살아가는데, 언제 노는 감각을 길러보고 탕진하는 경험을 해봤겠는가. 놀라고 손짓하는 <선데이 아이스크림>는 그래서 반갑다. 이 전시는 제목 그대로 달콤한 감각을 제공한다. 우선 내용부터 감각이다. 나른한 일요일에 먹는 아이스크림 같은 경험이 목적이다. 일요일에 갈만한 대학로의 지도를 (관객) 멋대로 그리거나, 아예 80년대 전자오락기를 변용한 VJing머신을 공간에 갖다 놓는가 하면, 분초 단위로 현대인을 압박하는 시계초침을 제거하고, 일요일의 일상을 차분하게 싱글채널 비디오로 드러낸다. 이 가운데 눈에 뜨였던 것은 오정미의 <선데이 브런치 퍼포먼스>다. 전시장 길목에 의자와 탁자를 두고서 관객에게 토스트를 제공하며 수다를 떠는 것이다. 그것이 마땅치 않으면 탁자에 놓인 만화책을 보면 된다. 언뜻 보면 하는지 마는지 같은 ‘행위’지만, 오히려 다양한 볼거리 가운데 중심을 잡아준다. 이 점은 다분히 공간과 조응한 탓이 크다. 제로원의 전시공간은 매우 역동적이다. 지하로 내려오는 계단부터 양쪽으로 불균형하게 갈라진 공간 때문에, 자칫하면 작업들이 주눅들 공산이 없지 않다. 하지만, 입구에서 먹고 마시고 떠들다 보면, 어느덧 공간에 익숙해지고, 주변을 요령 있게 둘러볼 여유가 생긴다. 그 탓에 양념처럼 보이는 것 같지만, 갈수록 버젓이 주연 노릇을 한다. 이때 후각과 미각도 한몫 단단히 한다. 전시장에서 시각 외의 감각은 억압되기 마련, (물론 오프닝이긴 했지만) 달콤한 빵 굽는 냄새는 일순간에 시각중심 체계를 흔들어 놓는다. 다른 감각이 열릴 만한 조건이 형성되는 셈이다. 형식도 이 같은 내용에 호흡한다. 무엇보다 작품들이 ‘방만’하고, 공간에 다채롭게 펼쳐져 있다. 미술, 설치, 만화, 음식, 비디오, 애니메이션 등등, 작업마다 장르마다 왁자지껄하게 떠들어댄다. 원래 감각이란 그런 것이다. 감각은 사유하지 않는다. 사유처럼 집요하게 한결같음을 요구하지도 않으며, 건축 같은 체계를 구축하지도 않는다. 그저 가는대로 가는 것이다. 두리번거리다 끝나버려도, 그게 어때서, 치고 나가는 것이다. 물론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작업들 사이에 얼마간 불균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볼만도 하다. 불균형이야말로 감각에 어울리는 단짝이기 때문이다. 균형이야 ‘생각’이 알아서 하면, 그만이다. 놀 줄 모른다는 것은 감각이 억압되어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쌓기만 해서는, 넘쳐 나서 쓰지 못하게 되거나, 언젠가 무게 때문에 스스로 무너지기 쉽상이다. “모든 예술은 상당히 무용하다.”(오스카 와일드) 이제는 눈치 안보고 낭비하고 탕진해도 될만한 시기가 되지 않았을까. <아트인컬쳐> 2006.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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