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6년 11월 10일
![]() 1. 90년대 한국은 커다란 문화적 격변을 치러내느라, 적지 않은 홍역을 앓았다. 그것은 일찍이 한국에서 겪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종류의 충격이었다. 대중문화가 만든 무대, 황금의 탯줄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주연, 소비자본주의가 연출. 이렇게 삼박자가 어우러진 결과,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역사적・문화적 드라마가 한국사회를 수놓게 되었다. 신세대, 네 멋대로 해라! 이 얼마나 매력적이고 도발적인 드라마의 제목이었는지. 고다르의 영화제목을 고스란히 따왔지만, 그들 신세대 문화집단 <미메시스>는 제목만 ‘미메시스’한 것은 아니었다. 불란서의 68혁명이 그전의 사회혁명과 다르게 이데올로기의 영역을 둘러싸고 벌어진 문화운동이었던 것처럼, <미메시스>는 새롭게 재편된 문화지형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들어가 새로운 변화를 꿈꾸었던 것이다. 2. 기성세대에게 신세대의 외침은 귀청을 찢어대는 불쾌한 소음에 불과했을 것이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었고, 보릿고개를 힘겹게 참고 참았던 세대였다. 어쩌면, 소음 정도가 아니었을지 모른다. 오로지 앞만 보고 잘 살아 보세 달렸던 그들은 직감으로, 무엇인가 불온한 냄새를 맡았을 것이다. 안 좋은 예감이란 언제나 들어맞는 법, 당시 상황은 네 멋대로 해라 정도를 가볍게 넘고서, 기성세대의 심사를 완벽하게 헝클어트린다. 미메시스의 (어쩌면) 도플갱거이자 신흥 소비귀족인 ‘오렌지족’이 출현했던 것이다. 그들은 강남의 압구정동에 둥지를 틀고서, 새로운 자본주의의 미덕을 실천했다. 생산하는 대신에 거리낌 없이 소비했고, 사유하는 대신에 거칠 것 없이 감각했던 것이다. 지금까지 악덕이었던 것이 미덕이 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허나, 급격한 반란은 반동을 부를 수밖에 없었으니, “정의를 행하면 세계의 절반이 들고 일어나는 법.”(오시이 마모루) 과연 한국의 절반은 도덕의 깃발을 휘날리며 불같이 들고 일어났고, 언론은 연일 부채질하기 바빴다. 하지만 영리한 사람은 잘 알고 있었다. 압구정동의 현재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가늠한다는 것을. <듀플렉스>가 웅크린 자락은, 바로 그곳 흥미롭게도 압구정동 로데오거리 맞은편이었다. ![]() <듀플렉스>의 전시공간은, 정말로 그것이 ‘전시공간’이라면, 상당히 색달랐다. 지하1층 깊숙이 선회하며 내려간 그곳은 규모만 작을 뿐, 전시보다 ‘쇼케이스’에 적절해 보였다. 높은 천장은 화려한 조명이 알록거리며, 한쪽 높은 곳에는 DJ가 정신없이 음악을 조율했고 한쪽 낮은 곳에는 음식을 끊임없이 조달했다. 곧바로 ‘클럽’을 운영해도 될 것 같았다. 게다가, ‘예술의 행복한 미래’라니. 무겁게 받아들이든 가볍게 웃어넘기든, 무엇인가 알 수 없이 목에 걸렸다. 그래도 뭐 어떠한가, 불행한 것보다 행복한 것이 낫지, 넘기기에는 내부 공간의 논리와 외부 맥락의 지형이 사뭇 복잡했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했다. 그곳이 ‘감상’하는 공간이 아니라는 것. 눈은 돌아가고 귀는 찢어지고 코는 간지럽고 몸은 들썩이는 등등, 감각만이 허용되는 곳이었다. 물론 오프닝행사 탓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분위기 문제만일까. 무엇보다 이런 공간에서 작가 한명 한명의 작업 하나 하나를 섬세하게 분석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공간의 논리 자체가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곳에 설치된 작업들은 공간의 질서에 완벽히 사로잡혀, 기껏해야 공간을 꾸미는 소품이상의 역할을 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오해할까봐 지적해 두지만, 작품이 반드시 갤러리에 걸려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공간의 논리가 함축하는 문화적 의미다. 그런 측면에서, <예술의 행복한 미래>는 상당히 중요한 징후를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 오늘날 예술이 자본의 논리에 포섭되는 또 다른 양상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듀플렉스>를 둘러싼 지리적 맥락과 역사는 더더욱 중요한 변수처럼 보인다. 4. 1992년 12월 12일, 압구정동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전에 없는 불온한 기운이 감지됐기 때문이다. 그것도 압구정동을 대표하는 갤러리아백화점에서 벌어졌으니, 놀랄 만도 했을 것이다. <압구정동: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당시의 쟁쟁한 젊은 작가와 이론가가 합심하여, 소비자본주의의 한복판에서 그것의 문화를 비판했던 것이다. 14년이 지난 현재, 그 같은 기운을 찾기란 어렵게 되었다. 아마도 불가능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낡은 좋은 것보다 새로운 나쁜 것 위에 건설하라.” 브레히트는 리얼리즘과 다른 방식으로 자본주의에 저항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의 테제는 자본의 순환을 보장하는 ‘유행’이란 표어로 수렴됐다. 아이러니. 한때 한국의 미술은 압구정동을 멀찍이 떨어져 응시했다. 하지만, 오늘날 미술은 압구정동에 둥지를 틀려고 한다. 시간의 수레바퀴가 한번 굴렀으니, 다시 한번 구를 수 있을까. 이글루스 가든 - 미술을 보고 읽고 쓰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