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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1월 23일
![]() 이것이 오늘날 현대인의 구질구질한 풍경이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고 하지만, 떠나봐야 그것마저 일이 되기 일쑤다. 왜 이렇게 됐을까, 고민해 보지만, 일개 개인이 혼자서 생각해 봤자, 욕밖에 안 나온다. 보이지 않는 인형사의 손놀림에 이리 저리 놀아나는 꼴이다. 그렇게 해서 남는 것은, 비루한 일상뿐이다. 신문의 인물란에 잘 나가는 인간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등장하건만, 그래봤자 안 나가는 나하곤 아무 상관없는 먼 나라 일일뿐. 니시자와 치하루의 <Dream House>는 그러한 구석을 슬며시 찌른다. 하지만, 아프지는 않다. 그의 시선이 따뜻하기 때문일까. 그렇게 보이진 않는다. 작아지고 작아져서, 이제는 보기도 쉽지 않은 존재들. 연민인지 동정인지 별로 우습지도 않지만, 보고 있노라면 우습기도 어쩔 수 없다. 헛웃음 같다고 할까. 그의 그림은 그래서, 화사하지만 건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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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도 정확히 조응한다. 그의 그림은 ‘깊이’가 없다. 농담하는 것도 아니고 비난하는 것도 아니다. 이 점을 마스킹 테이프를 사용하는 독특한 기법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 하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존재의 문제, 세계와 주체와 둘의 관계를 보는 작가의 관점의 문제로 넓혀야 한다. 왜냐하면 형식은 내용의 논리이기 때문이다. 결국, 사유의 문제인 것, 사유의 두께가 점점 얇아진 결과다. 세계가 얄팍해진 것은 그것 때문이다. 작가만 탓할 문제는 물론 아니다. 들이는 대로 보내기 바쁜 감각이 지배하는 세상이, 그렇게 돌리고 있는 탓이다. 그렇다고, 선뜻 동조할 사항도 또한 아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픔도 없고, 떨림도 없다. 재치라도 있었으면 좋으련만, 구체성이 빈약한 탓에, 그것마저 여의치 않아 보인다. 이글루스 가든 - 미술을 보고 읽고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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