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년 12월 31일
![]() 메세나와 마이케나스 예부터 돈과 권력과 예술의 관계는 끈끈했다. 돈 없는 작가는 살아갈 돈줄을 찾았고, 돈 많고 힘 있는 사람은 빛내줄 금칠을 원했다. 이것은 방식만 다를 뿐 고대부터 지금까지 다를 것이 없다. 예를 들어, ‘메세나Mecenat’를 생각해 보자. 이 용어는 기업의 순수한 공익적 예술후원활동을 의미하는 것으로, 고대 로마의 정치인 마에케나스Maecenas에서 기원한다. 알려진 대로, 그는 베르길리우스와 호라티우스 등등, 당대의 기라성 같은 예술가를 지원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순수한 지원활동에 그쳤던 것만은 아니다. 마에케나스는 로마가 공화정에서 황제정으로 탈바꿈하던 시기에, 아우구스투스황제를 지지했던 황제파 정치가였다. 그랬던 마에케나스가 브루투스를 지지했던 호라티우스를 지원했으니, 당연히 대가가 따랐을 것이다. 이후 호라티우스는 공화주의자의 옷을 벗어 던지고, 아우구스투스의 가까운 ‘친구’가 됐다고 한다. 주지하다시피, 브루투스는 치졸한 암살자가 아니며, 카이사르는 공화정을 전복한 독재자다. 후원자와 로렌초 그러면 후원자patron의 대명사 ‘로렌초 데 메디치Lorenzo de Medici’는 어떨까. 요즘 말로 ‘엄마 친구 아들’ 중의 아들인 로렌초는 피렌체의 메디치가문 자체였다. 가문의 영광, 개인의 재능, 주변의 인정, 권력의 수장 등등, 인간이 누릴 만한 모든 것을 갖춘 ‘더 맨the man’이었다. 아, 초상화를 보니까, 다행히 잘 생긴 얼굴은 아닌 것 같다. 어쩌면 그나마 부족한 점이 있었기에, 더욱 매력적으로 보였을지 모른다. 어쨌든 그랬던 로렌초가 발 벗고 예술을 지원했으니, 결과는 자명했다. 보티첼리, 베로키오, 다빈치, 미켈란젤로 등등, 르네상스를 주름잡았던 예술가들은 로렌초의 직접 간접 후원을 받았고, 무수한 걸작을 세상에 내놓았다. 사실 이러한 메디치가문의 ‘미담’은 잘 알려져 있지만, 예술을 둘러싼 ‘뒷담’은 그다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마이케나스의 전례처럼, 로렌초 역시 정치와 무관하지 않았다. 오히려, 단 한 번도 공직에 오른 적이 없었지만, 막후에서 교회과 정치를 주물렀던 그였다. 여기서 근대의 경향예술이 그랬던 것처럼 예술이 직접 동원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당시의 미술이 대부분 주문생산이었던 사실을 생각해 본다면, 교황과 벌였던 치열한 이데올로기투쟁의 수단으로 활용했던 흔적이 없다고 하기는 힘들다. (메디치가문의 가신이었던 보티첼리가 나중에 교황청으로 넘어갔던 것을 생각해 보라) 실제 그들의 작품에서 보이는 종교와 과학의 긴장은 그러한 흔적일 것이다. 예술과 사회 후원자 로렌초의 취미를 애써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 그러한 지원과 계기가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이뤄냈고, 이후 인문주의의 밑바탕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다만, 보이지 않았던 이면의 관계를 밝히는 것은 필요하다. 그래야만, 예술이 어떠한 관계를 맺었는지, 어떠한 길로 가야할지, 좌표를 마련할 단초를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예술이 정치와 자본과 사회와 손잡는 것은, 비판할 일도 비난할 일도 아니다. 역사적 현상이자 현실의 일부로서, 사회와 정치와 경제와 이런 저런 관계를 당연히 맺을 수밖에 없다. 근대의 모더니즘에 이르러, 예술이 독립할 계기와 능력과 의지를 마련했다곤 하지만, 냉정히 봤을 때 반쪽의 자유에 불과하다. 시장의 논리에서 봤을 때, 예술가는 기껏해야 소상품 생산자에 지나지 않는다. 모더니즘이 사회와 관계하지 않는 방식으로 관계했다고 아도르노는 완곡히 표현했지만, 시장에 밀착된 정도는 더하면 더했지 수준이다. 오죽했으면, 그린버그조차 전위대를 두고서, ‘황금의 탯줄’에서 태어났다고 했을까. 스스로 광대로 묘사하며, 정신을 분열시킬 수밖에 없었던 작가의 존재이유도 이해해 봄직도 하다. 그러면, 뒤늦게 출발한 한국의 경우는 어떨까. 이탈리아의 로렌초는 고사하고, 영국의 사치도 사치다. 한국의 현주소 예를 들어 보자. 한때 한국에 묻지마 미니멀리즘 시대가 있었다. 이유가 무엇인지,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2007년 한국미술계의 파워 1위를 자랑하는 홍라희 삼성문화재단 이사장이 선호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홍라희이사장의 미적 취미는 논의의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개인의 영역이지, 논쟁의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그 한 명의 취미가 한국미술의 생산과 유행을 고스란히 좌우한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미니멀리즘의 미술사적 의의를 깎아내릴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하지만, 역사적 가치를 지니는 외국의 양식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한국에 불쑥 출현한 것은, 유령이 현실에 소환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삼성이 대단한 것인지, 미술이 허약한 것인지, 어쨌든 미술계로선 매우 슬픈 일이다. 앞서 지적한 사치와 비교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만, 경우가 다르다. 브랜드마케팅의 결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사치는 ‘영국의 젊은 녀석’을 찾아내어, 하나의 경향을 일궈낸 공로가 크다. 한마디로 자기네 현실과 호흡하며 출현한 작품을 잘 다듬어, 전체 미술계에 활력을 불어 넣었다는 것이다. 그 동안 삼성미술관의 공로가 없다고 할 수는 없겠다. 알다시피, <리움>, <로댕갤러리>, <호암미술관> 등등, 현재 삼성미술관의 위치는 확고하다. 미술동향의 정밀한 풍향계이자, 미술시장의 가장 큰 손으로서, 한국의 미술계를 든든히 받치는 대들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특히 그곳들이 수집한 고미술은 양과 질의 측면에서 국립미술관보다 낫다고 할 정도다. 최근에는 현대미술까지 적극 수용하여, 신선하고 실험적인 작가를 지원하여, 좋은 바로미터 역할을 하고 있다. 삼성을 비판한 장영혜중공업과 ‘파인’ 아트와 거리가 먼 강홍구가 좋은 예겠다. 그랬던 것이, 삼성비자금 사건으로 말미암아, 공들여 쌓았던 탑이 일거에 무너질 위기에 빠졌다. 벌써부터 내년 일정이 축소 혹은 취소될지 모른다는 이야기가 나돈다.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 문제는 이러한 사건이 예외가 아니란 것이다. 비자금 세탁소 재벌의 입장에서 미술관은 나쁠 것이 없는 활동이다. 우선, 세상에서 얻은 것을 다시 뿌린다고, 환원의 의의는 두말의 여지가 없다. 가뜩이나 좋지 않은 재벌의 이미지개선에도 물론 도움이 된다. 그뿐만 아니다. 미술관은 공익재단이기 때문에, 각종 세금혜택이 따른다. 꿩 먹고 알 먹고, 재벌이나 대중이나 나쁠 것이 없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고, 한국에서 실제 돌아가는 모습은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성곡미술관>과 <삼성미술관>에서 발생한 두 개의 비자금사건이 바로 보여준다. 이미지개선도 세금혜택도 부족했던 것일까. 전자는 현재 조사가 거의 끝났고, 후자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두 곳 다 한국미술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큰 지라, 충격은 작지 않았지만, 곪았던 문제가 터진 것이기도 하다. 알다시피, 미술작품의 가격은 측정하기 힘들다. 노동력이나 마케팅비용처럼 비용을 산정하기 용이한 공산품이 아닌데다가 (대부분) 하나밖에 없는 희귀품이어서, 속성상 ‘양화’에 적대적이다. 그래서 작품도 신비지만, 가격도 신비처럼 느낄 때가 많다. 여기에 한국은 미술품에 양도세를 붙이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이니, 악한 마음을 품으면, 검은 돈을 세탁하기에 딱 좋다. 빠져 나가기 좋은 구멍이 둘씩이나 있는 것이다. 가격을 뻥튀기고 양도하면 되기 때문이다. 앞서의 비자금사건은 이러한 두 가지 ‘빈틈’을 활용한 사례일 것이다. 어쩌면 지하에서 리히텐쉬타인이 ‘눈물’을 흘리고 있을지 모르겠다. 언니네 미술관 옛날 대우의 <아트센터 선재>, SK의 <아트센터 나비>, 쌍용의 <성곡미술관>, 금호의 <금호미술관>, 동아일보의 <일민미술관>, 이곳의 공통점은 유력한 미술관일 뿐만 아니라, 관장이 여성이란 점이다. 김선정, 노소용, 박문순, 박강자 등등, 모두가 재벌의 딸이나 부인이다. 이것만 놓고서 나무랄 것은 아니다. 정말 좋아서 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실제 전문성을 갖추고 활동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앞서 지적한 대로, 엄청난 규모와 체계적인 전문성을 자랑하는 삼성미술관조차 다른 이해관계 때문에 모기업의 손아귀에 좌우되는 모습을 보면, 이 공간들이 실질적으로 독립된 역할을 하고 있을지 의심이 절로 난다. 물론, 아닌 곳도 있을 것이다. 안 봐도 비디오라며, 확인되지 않은 소문만으로 비판해선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최대한 냉정히 가라앉혀 드러난 사실만 판단해도, 파장이 너무 크다. 게다가, 미술과 여성이 이런 식으로 짝패를 이루는 것은 양자에게 비극이다. 모두에게 약자의 역할이 부정적으로 할당되어 있기 때문이다. 뿌리가 약한 나무가 튼튼한 줄기를 내기란 난망한 법이다. 사무실의 꽃처럼 미술관이 재벌의 장식품이 되서는 안 된다고 말하면, 순진하기만 한 생각일까. 예상된 후폭풍 벌써부터 걱정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당장에 삼성미술관이 내년 일정을 축소 혹은 취소할지 모른다는 소리도 들리고, 미술계의 큰 손들이 빠져서 힘들게 가꾼 미술시장이 약해질까 걱정하는 소리도 들린다. 삼성미술관이 실제로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미술시장도 한 두 명의 손길에 좌우될 정도로 약하진 않다. 만족할 만큼은 아니지만, 지난 10년간 나름의 합리화를 거쳤기 때문에, 잠시 주춤할 수 있을진 몰라도. 분명한 것은 이참에 먼지를 털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재벌미술관이 지금까지 비자금을 세탁하는 곳으로 활용됐다면, 공정한 수사를 거쳐서 해결하면 그만이다. 법대로 상식대로 하면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다음이다.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는 것. 지금까지 재벌미술관이 이뤄냈던 성과를 무시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번을 계기로 왜곡된 구조를 바로 잡으면 되는 것이다. 게다가, 미술계의 여건은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다. 미술시장도 활황이다. 너무 빨리 시장이 커지고 있는 탓에, 투기자본의 유입이나 뻥튀기와 끼워 팔기 등등, 부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흐름이 전체 미술계의 합리화에 기여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대중들도 이러한 분위기를 타고서 미술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핵심이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그저 좋아할 수 있는 것. 순진한 생각이겠지만, 그렇게 얻는 소소한 기쁨이야말로, 미술계 문화를 살찌우는 동력일 것이다. 많은 사람이 손을 더럽히지 않은 채,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 바로 미술관이기 때문이다. <artrade> 창간호 2008년 1월 이글루스 가든 - 미술을 보고 읽고 쓰기 이 글과 관련있는 글을 자동검색한 결과입니다 [?]
| ||||||